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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 히바

전설에 따르면 히바는 노아의 아들인 셤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 세워졌다고 한다. 히바는 카스피해와 볼가강으로 가는 실크로드의 지류에 위치한 작은 요새와 교역소로서 8세기까지 존재하였다. 16세기초에 히바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북적되는 노예 시장이 들어섰으며, 다음 3세기동안 티무르 영토의 중심이 된다. 히바는 샤이바니 왕조의 한 왕후인 일바르스가 1512년 히바 지방에 독립왕국을 세운 것을 기원으로 한다. 이후 히바 칸국은 주변의 카자흐, 칼무크, 투르크멘 등 여러 민족과 부하라 칸국의 침략에 시달렸다. 제13대 군주 아불가지 바하두르 칸(재위 1643∼1663)은 유명한 역사가로 《투르크족의 계보(系譜)》를 저술하였다. 히바 칸국은 1717년 러시아의 표트르 1세의 침략을 받았고, 1873년에는 다시 카우프만 장군에게 침략당하여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었다가 2월 혁명 후 1920년 완전히 멸망하여 1924년 히바 칸국의 영토는 우즈베키스탄에 편입되었다.

히바는 세계에 대수학을 전달해준 지루한 도시인 우루겐치에서 남서쪽으로 35킬로미터(22마일)떨어진 곳에 있으며 면화숲과 과일나무, 끝없는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다. 현대의 히바는 아주 기이한 곳이다. 중앙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히바의 중심지는 완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너무 번쩍거리게 깨끗해서 모든 생명이 숨이 막힐 것같다. 히바가 이처럼 유물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었던 이유는 이 곳이 키질쿰이라는 극도의 건조한 사막성 기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건조한 기후는 과거 유물을 보존하는 데 최적의 기후를 제공하였고 찾아오는 이 없는 고립된 환경은 유적 보존의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19세기에 러시아가 마침내 티무르의 지배로부터 이 지역을 빼앗게 될 때까지 가장 용맹스런 사람들조차 이 사나운 민족과 그들의 사막 영토에 들어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영국이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두 명의 첩보원을 이곳에 보냈지만 한 명은 사형당하고 나머지 한 명은 노예로서 비참한 인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히바는 많이 친절한 편이다. 드문 드문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히바 사람들은 웃음을 아끼지 않는다. 시내에 밀집하여 있는 모스크사원, 무덤, 궁정, 메드레사에서조차 여행자는 고적한 침목과 실크로드의 영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사마르칸트가 청색, 부하라가 갈색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히바는 터키석 타일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특히 성벽 내부도시인 이촌 칼라(Ichon Qala)에서는 이러한 타일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히바의 명소에는 넓적한 터키석 타일로 된 칼타 미노르 첨탑(Kalta Minor minaret), 쿠크나 아르크 요새(Kukhna Ark fortress), 218개의 목재기둥으로 된 주마 모스크사원(Juma Mosque), 화려하게 장식된 토쉬-코블리 궁전(Tosh-KhovliPalace), 이슬롬-후자 메드레사(Islom-Huja Medressa)와 그 안의 등대처럼 보이는 첨탑, 정교하게 타일로 붙여져 있고 이슬람인들에 존경의 표본인 파라본 마무드 모슬럼(Pahlavon Mahmud Mausoleum)이 있다.

교통

히바로 가기 위해서는 타쉬켄트에서 비행기로 3시간 정도 걸려 먼저 우르겐치로 가야 한다. 우르겐치에서 히바로 가는 버스는 보통 1시간이상 걸린다. 타쉬켄트에서 직접 가는 버스는 없으며 우르겐치를 들리는데, 20시간 정도 걸린다. 진정한 여행자라면 대사막의 길, 대초원의 길을 버스로 가 볼 것을 권유한다. 그래야 키질쿰 사막이 어떤 곳인 지를 알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