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닷컴's_골방/Uzbek

우즈베키스탄 - 외교관계

1. 개요

 

한국은 1991년 12월 30일 우즈베키스탄을 국가로 승인하였고, 1992년 1월 29일 공로명 주러시아 대사와 아크말 사이도프 모스크바주재 우즈베키스탄 전권대표가 양국간 외교관계의 수립에 관한 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우즈베키스탄은 수교 후 1992년 6월에는 카리모프 대통령이 공식 방한하여 양국관계의 긴밀한 협조와 양국관계 증진을 희망하였다.


주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이 개설되기 전까지는 주러시아 대사관에서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대사임무를 수행했고 1993년 12월에는 독자적인 대사관을 개설하여 양국관계의 발전과 교민들의 사기 양양에 도움을 주었다. 1994년 3월에는 서건이 초대 상주대사(타지키스탄 대사 겸임)가 부임하였다. 1994년 6월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하여 정치적 신뢰구축과 경제적 협력, 문화교류에 합의했다. 92년과 95년, 그리고 99년에 카리모프 대통령은 한국을 세 번식이나 방문하였다.

 

2. 민간교류

 

민간교류 차원에서의 가장 큰 문화관계는 대학교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대학교의 한국어과 할동이 가장 활발하다. 우즈베키스탄에 한국기업과 한국인들의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각 대학교 한국어과는 인기학과로 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입학경쟁률도 매우 치열하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두 개의 대학에 한국어가 개설되어 있다. 사범대학교와 동방대학교의 한국어과 현황은 다음과 같다.

 

1) 우즈벡 대학교에서 한국어 열기

   한국어과를 발전시키기 위한 한국정부의 후원은 상당하다. 이로 인해 우즈베키스탄에 한국어가 보급되고 있으며 한국어를 배운 현재의 대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의 각 방면의 교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문화와 우즈베키스탄 문화를 모두 아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한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우즈베키스탄어를 가르치는 곳은 부산 외국어대학교와 호서대학교가 있다. 부산외국어대학교는 1995년부터 중앙아시아학과에서 우즈베키스탄어를 가르치고 있다. 호서대학교에서는 해외개발학과에서 우즈베키스탄어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전문가가 부족한 실정이다.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요청되고 있다.

 

2) 한국어 교류 발전

   한국어교육에 대한 민간교류는 대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96년 12월 24일에 우즈베키스탄 국영 4방송은 한국교육원과 한국국제협력단과 한국어 방송에 대한 내용과 형식을 결정하는 1차 회의를 열었다. 1997년 1월 18일 토요일 낮 12시 45분에 첫 방송을 시작했다. 이 한국어 방송강의는 우선적으로 한인을 위해 실시한 것이다. ‘한국어를 배웁시다’라는 프로그램은 전체 50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재는 한국국제협력단원이 주축이 되어 구성했다. 이 방송은 우즈베키스탄에 한국어를 알리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이처럼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어교육이 대학교와 방송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뒤 모국어를 잊어버린 고려인들의 한국을 알아야 겠다는 의식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기업들과 한국사람들이 들어오면서 고려인들 사이에 잊어버렸던 모국어를 배워야 겠다는 열의가 확산되어 갔다. 한국정부와 민간단체도 이에 호응하여 한국어교육에 투자를 하고 있다.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한국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따라서 고려인을 제외한 다른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이 한국어를 배우게 되면 간접적인 문화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화를 배우기 위해 가장 좋은 수단은 그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을 홍보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역시 우즈베키스탄 국영 4방송에서 제작되고 있다. '친선'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토요일밤 8시에 방송되고 있다. 한국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위의 문화교류는 실질적으로 한국정부와 민간단체가 공동으로 주체가 되어 행하고 있다.


민간단체 차원에서도 한-우즈벡 교류도 확대되고 있다. 1995년 12월 12일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여자어린이 4명이 한국심장재단의 초청으로 치료를 받기 위하여 한국에 왔다.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영부인인 타찌야나 여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심장재단 관계자를 만나 사업내용을 듣고 양국의 우호증진과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우즈베키스탄 어린이들을 초청해 치료해 줄 것을 제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삼성의료원에서 한달 간 치료를 받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1995년 3월 20일 한국의 경희대 수원캠퍼스에서는 공대학생회와 우즈베키스탄 폴리토젤 집단농장이 상호교류협정을 맺고 앞으로 양자간에 사랑의 선물교환, 상호방문 및 교류 등 자매결연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1996년 9월 한국방송공사는 타쉬켄트 인민궁전 앞 광장에서 음악회를 개최하여 양국의 우호를 확인했다. 이 음악회는 우즈-대우자동차 준공을 계기로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제관계발전과 우즈베키스탄 독립기념일에 맞추어 추진되었다. 한국방송공사는 이 행사를 위해 타쉬켄트에 있는 대우의 모든 지사들과 협력하여 대규모로 계획했었다.


1997년 9월 고려인 강제이주 60주년 행사가 타쉬켄트 인민궁전에서 열렸다. 이 행사를 위해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이 행사를 계기로 우즈베키스탄의 여러 소수민족들이 화합될 수 있기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초청공연자들 중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을 대표하는 가수들과 다른 소수민족 무용단들이 나와 행사를 함께했다.


1997년 9월과 10월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전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이 각각 서울과 타쉬켄트에서 경기를 가졌다. 8년간의 문화관계를 통틀어 이보다 더 성공적인 교류는 없었다. 당시 한국은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국내에 축구열기가 상당했다. 따라서 한 경기 한 경기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언론은 국가대표팀이 원정가는 국가들을 상세히 보도하였다.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도 그러한 국가들 중 하나였다. 타쉬켄트에서 열린 양팀간의 경기는 단순한 축구경기를 떠나서 양국의 전반적인 문화를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특히 한국사람들은 우즈베키스탄에 대해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밖에도 고려인 화가인 신순남화백은 고려인 강제이주 기념전을 한국에서 두차례 가졌다. 또한 매년 개최되는 우즈베키스탄 영화제에 한국작품들이 출품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3. 양국 정상간의 공식적인 상호방문

 

1992년 6월 16일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한국을 처음으로 공식방문하였다. 그의 한국방문이 가지는 의미는 구소련 해체 후 한국을 방문하는 독립국가연합 첫 대통령이라는데 있다. 그는 4일동안 한국을 방문하면서 양국간의 관계협력증진 방안과 공동관심사에 대한 의견교환과 산업시찰을 하였다.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과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은 6월 17일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 공화국간 관계와 화해의 원칙에 관한 선언>에 합의 서명하였다. 이 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우즈베키스탄 공화국과 대한민국은 주권평등, 영토보전과 정치적 독립존중, 국내문제 불간섭,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포함한 유엔헌장 원칙에 따라 우호관계를 발전시킨다.

   ② 양국은 양국 국민간 우호관계와 상호이해 증진을 위하여 양국 국민과 사회기간간 광범위한 접촉과 유대발전을 촉진한다.

   ③ 양국은 상호이익에 기초하여 산업, 투자, 무역, 자원개발, 과학기술 및 수송분야에서 광범위한 협력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양국은 특히 양국 산업기간과의 긴밀한 협력을 장려하고 용이하게 한다.

   ④ 양국은 문화, 예술, 교육, 언론, 체육 및 관광분야에서 광범위한 협력을 증진한다. 양국은 학자, 학생 및 문화계 인사간 교류를 통하여 문화적 유대를 심화한다.

   ⑤ 양국은 소수민족의 권력보장이 세계공동체 안정에 있어서 기본요소임을 인정하고, 관련 국제협의에 따라 자국내 소수민족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는데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⑥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은 남북당사자간 직접대화를 통하여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여 평화적인 한반도 통일을 이루려는 한국국민의 노력을 지지한다.

   ⑦ 대한민국은 경제개혁을 이룩하고 민주사회를 건설하며, 국제사회로의 통합을 달성하려는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국민의 노력을 지지한다.      

   ⑧ 양국은 행정, 입법, 사법기관간 접촉을 장려한다. 양국은 양국 관심사항을 토의하기 위하여 국가원수, 외무장관 및 다른 정부 관료 또는 그들의 대표자간에 합의를 갖는다.


이 외에도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양국간 경제협력 증대와 의약품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양국정상들은 우즈베키스탄의 기술협력전문가와 기술연수생을 내년부터 한국에 파견할 것을 합의했다. 한국은 1992년 5월에 타쉬켄트에 신설된 한국교육원에 장학관 1명을 파견하기로 하였다.


1994년 6월 4일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을 공식방문했다. 그의 3일간 공식방문이 가지는 의미는 경제분야에서의 실질협력증진문제와 한인동포 권익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양국정상은 6월 6일 4개의 기본사항에 합의를 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항공협정에 관한 양해각서 - 양국의 지정 항공사는 상대국 영공 통과권을 갖는다. 그리고 상대국내 지사 설치 및 영업수익의 본국송금에 대한 권리도 갖는다.

   ② 문화협정에 관한 양해각서 - 양국정부가 문화, 예술, 교육, 학술, 정보, 체육분야 교류를 장려하고 자국민이 상대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도록 교과서와 백과사전, 신문 등 모든 공식적인 출판물에서 상대국의 역사적, 지리적 사실을 존중한다.

   ③ 자유통행에 관한 양해각서 - 자국내에 거주하는 외교공관원 및 국민에 대해 무제한의 자유통행을 보장하고 외무부간 협력의정서는 양국 외무부간에 상호 관심사에 대해 정기적으로 협의하는 실무그룹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한다.

   ④ 생명공학 및 농업기술분야의 과학기술협력 강화에 관한 양해각서 - 양국의 과학기술을 상호교류하며 특히 특정분야에 대한 협력을 강화한다.

   이 외에도 김영삼 대통령은 양국간 교역, 투자활성화를 위해 무역위원회 설치 및 자원협정을 체결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기술, 건설 등의 분야에서의 협력확대를 위한 우즈베키스탄측의 조속한 제도정비를 요청하였다.


셋째, 1995년 2월 15일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2차로 한국을 공식방문하였다. 그의 3일간 공식방문이 가지는 의미는 양국간 정치, 경제, 실질협력관계 증진 방안에 대해서 협의를 한다는 것이다. 양국정상은 2월 16일 ‘양국간 상호협력강화에 관한 선언’에 합의를 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호혜와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무역, 투자 및 여타 분야에서 양국간 협력을 증진 발전시키며 특히 농업, 에너지, 광업, 통신, 운송, 건설 및 자원개발 분야에서의 협력을 증진시킨다.

   ② 양국은 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지난해 6월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설치된 무역위원회 및 민간경제협력위원회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양국 실업인간 교류와 협력을 장려한다.

   ③ 양국은 이중과세방지협약 및 상사중재협정의 조기체결을 통해 양국간 교류 및 투자분야에서의 협력증진을 위한 법적기반의 확대를 위해 노력한다.

   ④ 양국은 과학기술협력을 강화해 나가며 이를 위해 과학기술 실무위원회 구성을 추진한다.

   ⑤ 한국은 경제를 재건시키고 민주사회를 건설하려는 우즈베키스탄의 노력을 지지하며 경제발전경험을 토대로 우즈베키스탄의 경제개발계획수립에 자문을 제공하고 우즈베키스탄의 산업인력양성을 위한 기술연수를 실시한다.

   ⑥ 양국은 문화, 교육, 스포츠, 관광 및 관심분야에서 광범위한 협력을 증진한다. 

⑦ 양국은 자유무역신장, 환경보호, 대량살상무기 감축문제 등 인류공동과제의 해결을 통한 인류전체의 복리증진을 위해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우즈베키스탄은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으로 유엔 활동에 적극 참여하려는 한국의 입장을 지지한다.

 

4. 우즈벡과 한국

 

중앙아시아와 한민족의 역사적 교류의 자료는 1975년에 알리바움에 의해 발표된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과학 아카데미 정식 발굴 보고서 '아프라시요프 벽화'이다. 알리바움은 이 벽화의 우측에 있는 사신들의 새깃털이 꽂힌 머리 장식을 보고 이들의 국적을 국적을 고구려인으로 분석하였다. 이 벽화를 통해 볼 때, 한민족과 중앙아시아의 역사적 교류는 통일 신라와 고구려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의 기록에도 국제무역이 매우 발달하여 멀리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를 방문했다는 흔적이 있다. 이 당시 중앙아시아지역은 아랍인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중국을 통해서 상당한 물물교류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또한 당나라의 서역 원정의 대표적인 장군이었던 고선지도 고구려인이다. 고선지의 아버지 고사계는 망국의 군인이였으며, 고선지는 쿠처-카슈미르-파미르고원-타슈쿠르칸-와캉강-달코트-키르기스를 정복하였다. 역사학자 스타인은 고선지를 알프스를 돌파한 나폴레옹에다 비유하였다.


소비에트 시대에도 스탈린의 소수민족 이동정책에 따라 극동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한 고려인은 18만명 이상이며, 타쉬켄트와 우즈베키스탄에만 현재 20만명 이상이 살고 있다. 고려인들은 주로 도시지역에 집중거주하는 경향이 있으며, 다른 민족에 비하여 교육수준이 높다.


1991년 독립된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의 관계는 지속적인 역사적 교류를 바탕으로 현재 활발한 교역을 진행하고 있다. 독립 당시 우즈베키스탄은 국제경제무대에 나아가기 위해 기술력, 자본, 인력 양성이 필요했으며, 한국은 CIS와 유럽진출의 교두보로서 우즈벡 시장을 주목하였다. 한국 기업은 우즈베키스탄의 정치적, 사회적 안정과 부강한 경제 자원을 주목하고 자본을 투자하였다.  


한국과 수교하는 한편, 우즈베키스탄은 북한과도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갖고 있다. 북한은 1992 1월 우즈베키스탄을 독립국가로 승인하였으며, 양 국가는 1992 2월에 수교하고, 1993년 상주공관을 개설하였다. 2000년 현재 북한은 2대 대사 김태삼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