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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 부하라

1. 개요


1000년의 역사에 걸쳐있는 건물과 2세기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 완전히 살아있는 도심지가 있는 부하라는 중앙 아시아에서 투르크스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다. 사마르칸트의 눈부신 모자이크와 달리 부카라의 평범한 갈색은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부하라는 여전히 대부분의 도심지에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으며 거대한 왕궁 요새, 여러 곳의 옛 메드레사, 수많은 고대의 공중 목욕탕, 옛시절의 거대한 시장터의 유적가 남아 있다.
 

10세기 무렵 부하라는 과학과 예술의 중심지로서 나라샤시, 루다키와 같은 시인이 배출되었고 아비시냐 같은 과학자가 배출되기도 하였다. 14세기에는 쉐이크 바하우트딘 낙슈반디라는 위대한 종교지도자가 나와서 종교 이론을 설파하였는데, 이 이론은 중앙아시아 일대는 물론 카프카즈(코카서스) 지방까지 널리 유포되었다. 16세기에는 과거 부하라 칸국의 수도로서, 이슬람 성직자 양성기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부하라는 처음 도시가 생성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그 위치를 옮기지 않은 채 수직적으로 성장해 왔다. 지금도 지하 20m의 깊이에서 주거지와 공공건물, 성채의 잔해 등 유적 뿐 아니라 도자기, 주화, 보석 등이 발굴되고 있다. 708년 부하라는 아랍인들의 침입을 받아 언어와 종교가 이슬람화으로 바뀌게 되었다. 구시가에는 13세기 칭기즈칸 침공 전후에 지어진 수많은 메드레세(신학교)와 모스크, 타키라는 둥근 지붕의 시장 건물, 미나레트() 등이 세워져 있다.


부하라는 옛레닌광장을 경계로 북쪽의 옛시가지와 남쪽의 신시가지,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교외 신흥주택 지구로 구분할 수 있다. 도시 중심부에는 구레닌광장이 있고, 광장의 남쪽에는 10월혁명 40주년 거리가 있다. 옛시가지는 칭기즈칸의 침공을 전후로 두개의 지구로 나뉘어졌는데 침공이전의 땅을 옛시가지로 부른다. 바로 이스마일 사마니 묘가 있는 키로프공원 주변지역이다. 칭기즈칸의 침공 이후의 땅은 신시가지라고 부른다. 부하라의 상징인 칼랸 미나레트, 아르크성, 생명의 물이 가득한 하우즈(연못) 3곳이 중심이다. 이 연못 주변에 세워진 17세기의 광장인 라비-하우즈(Labi-hauz)도 유명하다. 47미터(154피트)높이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12세기의 칼랸 첨탑(Kalan minaret)도 빠질 수 없다. 부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905년에 완성됨)로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정교한 이스마일 사마니(Ismail Samani)의 모슬럼도 필수 방문코스.


부하라는 현재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주(州)의 주도(州都)로서 부하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수도원'이라는 뜻이며 현지에서는 우즈벡어로 '보하로'라고 부른다. 인구 약 23만 명으로 쟈라프샨 강의 하류에 자리잡고 있는 부하라는 우즈베키스탄 동부지역의 문화중심지이며, 저지대에서 산출되는 가스와 농산물 가공, 모피 가공의 중심지이다. 서양에서 아주 귀하게 여겨지는 유명한 부하라 양탄자는 실제로는 인근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눈에 번쩍 띄이는 카펫을 만들지는 않을지 몰라도 현지인들은 사마르칸드나 타쉬켄트의 주민들보다 훨씬 더 친절하다.

 

 

2. 관광 포인트

 

ㅇ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

부하라가 자랑하는 수많은 유적들 가운데서도 첫 번째로 손꼽히는 것은 이스마일 샤마니왕의 영묘이다. 영묘 이슬람 통치 초기인 900년에 건설된 것으로 부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중앙아시아 건축물의 기념비적인 존재로까지 평가되는 이 영묘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 흙벽돌의 무늬가 오묘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여 신비감을 더해 준다. 벽돌을 사용해 쌓아올린 기법만으로 변화를 주어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어내고 있다. 구운 벽돌에 상감을 입혀서 만들었기 때문에 햇빛의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보인다. 여기에 사용된 진흙 벽돌은 수천년을 견딜 수 있도록 낙타 젖으로 반죽을 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ㅇ 칼리안 미나레트

부하라의 상징으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높은 미나레트(첨탑)이다. 칼란이란 페르시아어로 '크다'는 뜻이고 미나레 트는 '첨탑'이라는 말이다. 높이 46m의 칼랸 미나레트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1819세기 부하라 한국시대에는 죄인들을 이 탑의 꼭대기에서 내던져 처형했다고 해서 죽음의 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탑의 안으로 들어서면 나선형 계단이 있다. 주변은 한줄기의 푸른 타일로 장식해서 신비감을 더해준다.

옛날 칭기즈칸은 칼랸 미나레트를 목표로 부하라를 침공했으며, 이 때문에 탑이 파괴되지 않았다고도 전해진다. 미나레트은 망망한 사막에서 오아시스의 도시를 찾는 대상들에게 사막의 등대가 되었다. 미나레트는 사람들에게 하루 5차례 예배시간을 알려주는 기능과 함께 밤에는 사막의 등대역할을 했던 것이다. 옛날 캄캄한 사막을 여행하던 대상들은 탑의 꼭대기에 밝혀진 불빛을 목표로 물과 음식 그리고 사람들의 환대가 기다리는 오아시스를 향해 지친 몸을 이끌었을 것이다.

 

ㅇ 차슈마 아유프

성서에 등장하는 '욥의 샘'으로 욥이 지팡이를 세웠더니 이곳에서 물이 솟았다고 한다. 둥근 원추형 지붕의 3개중에 1개는 채광 창을 갖춘 이 묘는 칭기즈칸때 파괴된 것을 티무르가 복구했다. 지금은 건물 안쪽에서 신비한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 이 성스러운 샘은 둥근 지붕의 아름다운 건물 속에 보존되어 있다.

 

ㅇ 아르크(방주)

성곽은 7세기에 축성된 것을 몇번 개축한 것으로 18세기에 부하라왕이 살던 성터이다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타키

타키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시장으로 관문 역할도 한다. 규모가 가장 큰 '타키 자르가'(둥근지붕의 보석시장)를 비롯, '타키켈리파크 푸르샨'(둥근비붕의 모자가게), '타키 사라판'(둥근 지붕의 환전소) 등이 있다.

 

ㅇ 리아비 카우스 바자르

16세기 이래 전통을 이어 오고 있는 이 곳은 금세공품, 금속공예품, 비단제품 등으로 유명하다.


3. 교통

 

부하라는 사마르칸트(6시간), 타쉬켄트(12시간), 누쿠스(Nukus)(20시간)로 기차가 연결되는 종착역이다. 또한 카자흐스탄의 알마타까지 가는 기차가 매주 운행된다. 타쉬켄트는 버스나 항공편(2시간)으로도 갈 수 있다.